[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한국전력공사의 5개 발전 자회사가 그동안 미뤄왔던 사장 공모를 본격 시작한다.

이번에 새롭게 임명될 사장들은 대다수가 '낙하산' 격인 정치권 인사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총선에 불출마했거나 낙선한 여당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보은 명목으로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는 예상이다.

각 발전사 내부에서는 전력업계나 내부인사가 아닌 정치인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불만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외풍을 막아줄 정치권 인사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회의적이다.

◆ 5개 발전사, 사장 모집 공고 시작…정치인 출신 다수 거론

9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5개 발전사는 지난주부터 이번주에 걸쳐 일제히 사장 모집 공고를 시작했다. 서류 접수기간은 ▲중부발전 2~10일 ▲동서발전 5~12일 ▲남부발전 5~15일 ▲서부발전·남동발전 8~16일 등이다.

사장 선임은 각 발전사에서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한 뒤 임추위가 후보자를 공모·추천하면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최종 후보자를 의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어 각 발전사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안건을 의결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방식이다.

임추위는 제출 서류를 기초로 후보자를 평가한 뒤 합격자에 한해 면접을 실시할 예정이다. 면접 일정은 서부발전 24일, 중부발전 25일, 남동발전 8월 1일 등으로 예정돼 있다. 남부발전과 동서발전은 아직 면접 일정을 별도로 공지하지 않았다. 서부발전과 중부발전은 이달 내로 면접을 진행할 예정인 만큼 가장 빠르게 사장이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5개 발전사 현 사장들은 지난 4월 26일자로 일제히 3년 임기를 마쳤지만, 차기 사장 선임 절차가 시작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각 발전사는 공기업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기 2개월 전에 임추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한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임추위를 조직했으나 정작 활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이는 임기가 만료된 달인 4월에 총선이 치러지면서 공공기관장 임명 사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총선 불출마로 희생했거나 낙선한 인사들을 임명하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절차를 늦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신임 사장으로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은 대부분 정치권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내부 승진을 통해 사장을 임명해 온 중부발전과 산업부 출신을 주로 기용하는 남부발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권 인사들이 거론된다.

통상 5개 발전사 사장은 산업부 출신·한국전력공사 출신 1~2인과 내부 승진 인사 1인, 정치권 인사 1인 등으로 채워져 왔다. 현 사장들을 보면 박형덕 서부발전 사장과 김회천 남동발전 사장이 한전 부사장 출신이다. 김호빈 중부발전 사장은 내부 승진으로 임명됐다. 이승우 남부발전 사장은 산업부 출신, 김영문 동서발전 사장은 정치권 인사로 각각 분류된다.

발전사별로 하마평되는 인물을 보면 남동발전에는 강기윤 전 국민의힘 의원이, 동서발전에는 권명호 전 국민의힘 의원이 언급된다. 강기윤 전 의원은 제21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와 국민의힘 제5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권명호 전 의원은 국민의힘 원내부대표와 제21대 국회 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

서부발전 사장으로는 홍문표 전 국민의힘 의원이 거론된다. 홍문표 전 의원은 충남 홍성군·예산군을 지역구로 삼아 4선에 성공한 의원이다. 제22대 총선에는 불출마했다. 그가 가진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신임 사장에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다.

줄곧 내부 승진으로 사장을 채용해 온 중부발전은 이번에도 내부 승진한 인사가 사장직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로 산업부 출신을 기용해 온 남부발전도 산업부 출신 인사가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남동발전과 동서발전은 정치권 인사가 유력하지만, 서부발전은 정치권 인사와 더불어 한전 출신 인사도 하마평된다.

◆ 산업부·한전 출신보다 정치인 하마평…정치인 일색 우려

5개 발전사가 그동안 유지해 온 통상적인 흐름과 달리 이번에는 정치권 인사가 가장 많이 선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예상이 실현될 경우 산업부와 한전 등에서는 불만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부는 상반기 중 임기를 마치는 공기업 기관장이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4월 총선을 고려해 인선 절차를 늦췄다. 이는 총선과 관련된 인사들에게 직위를 주기 위함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더군다나 총선이 여당의 패배라는 결과로 이어진 만큼, 정치적 영향력 확보와 정책 추진의 일관성 등을 위해서는 여당 인사들을 기용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분석된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에 정치인 출신 사장들을 임명한 바 있다. 현 김동철 한전 사장은 4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한전 창립 이후 62년 만에 처음으로 정치인 출신 사장이 됐다.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정용기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도 국민의힘 의원 출신이다.

정치권 인사들이 물망에 오르는 것을 두고 각 발전사들의 내부 반응은 엇갈리는 모습이다. 산업부나 한전 출신 등 업계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사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오히려 정무적인 능력과 감각이 있는 정치인이 수장을 맡을 때 조직이 더욱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한 발전사의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신임 사장으로 이름이 거론될 정도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예상이 많다"며 "총선과 시기가 맞물린 만큼 정치인 출신이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분이 사장을 맡는다는 데에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른 발전사의 관계자는 "기관을 생각했을 때는 오히려 정치적인 입지를 다져 온 정치인 출신이 사장을 맡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며 "업계에 능통하지는 않더라도 외풍을 막아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다면 기관에서 환영받는 사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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