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한·미·일·중·러 등 세계 주요국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 외교장관들이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아세안 관련 연쇄 회의를 열고 지역 및 글로벌 현안을 논의한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라오스는 25일부터 28일까지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을 연쇄적으로 주최한다.

아세안은 냉전 시기인 1960년대 지역 및 국제 정세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들이 결성한 협의체다. 현재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10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동티모르가 정식 회원국으로 합류한다.

아세안 회원국과 11개 대화 상대국, 6개 부분 대화 상대국 등은 매년 이 기간에 다양한 장관급 회의를 갖는다. 이 중 EAS는 아세안과 한·중·일 외에도 호주, 뉴질랜드, 인도, 미국, 러시아 등이 참여하고 있고, ARF는 아시아 최대 다자 정치안보 협의체로 북한까지 참여하고 있다.

아세안 연쇄 장관회의는 아세안을 구심점으로 삼아 지역 및 세계 현안을 논의하는 독특한 구조다. 미얀마 문제와 같은 아세안 국가들의 현안은 물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대만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 문제 등 다양한 글로벌 이슈들이 논의된다. 특히 동남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가 충돌하는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 지역이어서 아세안에 대한 관심과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2024년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공식 로고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미·중 경쟁

중국과 아세안 각국이 충돌하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안이다. 남중국해 문제는 미얀마 문제와 함께 아세안에게 가장 분열적인 이슈다. 최근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충돌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을 끌어들여 필리핀과 군사 협력 강화에 나서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일본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처지다. 미국은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일본, 필리핀과 3국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이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적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3국이 손을 잡은 것이다.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충돌은 아세안 국가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미·중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강대국 경쟁 속에서 중립을 표방하는 정책을 고수해왔지만 남중국해 문제 당사자인 필리핀은 친미로 기울었다. 태국도 중국보다는 미국에 가깝다. 중국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필두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세안 우호국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아세안의 대표적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중국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룰 ARF에서 각국이 어떤 입장을 보일 것인지, 의장 성명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주목된다.

◆아세안 외교 재개하는 미얀마 군사 정권

이번 회의에서 아세안 문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얀마 군사 정부의 동향이다. 미얀마는 2021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군사 정권 대표가 ARF에 참석할 예정이다.

미얀마 군부는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이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승리한 것에 반발해 이듬해 2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반대 세력을 유혈 진압했다. 아세안은 2021년 특별 정상회의에서 미얀마 내 폭력 중단 등 5개 항에 합의했으나, 미얀마 군정이 이를 지키지 않아 각종 회의에 미얀마를 배제시켰다. 그러나 올해에는 미얀마가 '비정치적 인사'인 외교부 차관급을 파견할 예정이어서 ARF 참석이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가 비정치적 인사를 보내 아세안 외교 무대에 복귀하려는 것은 미얀마를 고립시키고 제재하는 것보다 회유를 통해 외교의 장으로 다시 끌어들여야 한다는 아세안 일부 국가의 주장이 힘을 얻은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미얀마 군사 정권이 내부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이 외교 무대 복귀를 결정한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아세안 회의 결과물인 공동 성명에 미얀마 문제가 어떻게 표현될 것인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 [사진=외교부] 2024.07.25.

◆북한에 쏠리는 시선

ARF는 북한이 참여하고 있는 역내 유일의 다자 안보 협의체다. 북한은 매년 ARF에 참석해 지역 현안과 남북 관계, 대미 관계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북한은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ARF에 외무상을 보내지 않고 있다. 대신 회의가 열리는 나라에 주재하는 대사나 주 아세안 대표부 대사를 수석대표로 파견했다.

올해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 동맹을 맺고 대외적 행보를 늘려가는 추세인데다 주최국인 라오스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엔 최 외무상이 직접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북한은 회의 시작 직전까지 외무상 파견과 관련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올해에도 라오스 주재 북한 대사가 참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이 이번 회의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 특히 '남북 2국가 선언'과 러시아와의 군사적 협력 강화 등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북한의 핵 개발에 부정적 입장을 강하게 표명했던 아세안 국가들이 최근 북한의 행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한편, 이번 회의를 계기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아세안 각국 및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참가국 외교장관들과 양자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아직 최종적으로 발표할 단계는 아니지만 10여 회 양자 회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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