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친러·친중 행보로 유럽연합(EU) 다른 회원국들과 계속 마찰을 빚고 있는 헝가리가 최근 중국에서 10억 유로(약 1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차입했다. 이번 차입은 헝가리가 다른 나라에서 빌린 금액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이 추구하는 가치·전략과 계속 엇박자를 내면서 EU의 최대 골칫거리로 떠오른 헝가리가 글로벌 권위주의·정권과 더욱 밀착해가는 모습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를 8일 베이징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신화사=뉴스핌 특약]

25일(현지 시간) 외신에 따르면, 헝가리는 중국개발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 등 중국 은행 3곳에서 10억 유로를 대출받았으며, 이 돈은 지난 4월 19일 전액 인출됐다. 헝가리 정부는 이번 차입과 관련된 내용을 일절 발표하지 않다가 경제 매체인 포트폴리오가 단독 보도하자 결국 시인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헝가리가 중국에서 '조용히(quietly)' 대출을 받았다"면서 "이자율이 가변적이라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실제 이자율이 얼마인지, 상환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등 자세한 내용을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빌린 돈은 에너지와 인프라 부문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헝가리의 공공부채는 1400억 유로(약 210조원)로 국내총생산(GDP)의 73.5% 수준이다. 이는 헝가리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폴리티코는 "헝가리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6.7% 정도"라며 "부다페스트는 현금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헝가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대러 관계, 이민, 인권, 법치주의 등을 놓고 EU 측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22년 12월 헝가리에 투자할 예정이었던 220억 유로를 동결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EU와 거리를 두고 있는 헝가리는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 전기차 1위 기업 비야디(BYD), 정보통신(IT) 기업 화웨이 등이 지금까지 헝가리에 투자한 금액은 160억 유로에 달한다. 차입금 규모 1,2위도 모두 중국이 제공한 것이다. 지난 5월 헝가리와 중국은 에너지와 인프라 등 18개 분야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긴밀하게 협력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로이터 통신은 "헝가리가 중국에서 전혀 거리낌 없이 돈을 끌어다 쓰는 모습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다른 EU 회원국들과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EU와 헝가리의 갈등은 최근 들어 더욱 첨예화되는 양상이다. 이달부터 헝가리가 6개월짜리 EU 순회의장국이 되자마자 빅토르 오르반(61) 총리는 중국과 러시아 등을 직접 방문, 상호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EU 집행위와 회원국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급기야 EU 집행위는 헝가리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를 보이콧 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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