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구영배 큐텐 대표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의 낮은 진입장벽과 수천억 원의 판매대금을 유용할 수 있게 눈 감아 준 느슨한 규제를 악용해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

구 대표는 부실 기업을 인수하거나 판매대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란 관측이다.

구영배 대표는 현재 증발한 판매대금의 행방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지만, 판매대금을 회사 인수합병(M&A)에 사용했다는 점은 직접 밝히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 "집단적 대규모 외상거래도 금융에 해당한다"며 "'시장에서 반칙하는 행위'를 강력히 분리하고 격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해 있다. 2024.07.30 choipix16@newspim.com

◆ 시장 활성화를 위해 진입장벽 낮추고
금융 소비자 보호 외면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영배 큐텐 대표는 낮은 진입장벽과 느슨한 규제를 활용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열린 정무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디지털 금융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커머스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진입 규제를 낮춰주면서 대신에 금융 소비자 보호와 건전성에 관련된 조항들은 넣지 않고 시행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지적했다.

구영배 대표도 2003년 G마켓을 창업했을 때 낮은 진입장벽을 이용해 빠르게 시장에 진입, 국내 초기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구 대표는 2009년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한 뒤 경업금지 조항이 끝난 2020년부터 다시 국내 시장 진출을 시도했다. 2022년 티몬을 시작으로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 위시, AK몰을 연달아 인수했다.

티몬을 비롯한 대부분의 회사는 큐텐이 인수했을 당시 극심한 적자를 기록하는 등 사정이 좋지 못했던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 기업들을 연이어 인수하는 데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들이 M&A를 시도할 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해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시장에 독과점 발생과 같은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를 검토할 뿐 그 외의 요소는 검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공정위가 큐텐의 티몬과 위메프 인수 신고를 승인해 준 것에 대해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현행법 하에서는 경쟁 제한성 이외 요소를 가지고 결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재정 상황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티몬, 위메프 등 큐텐 계열사의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티몬 사무실에서 피해자들이 환불을 기다리고 있다. 2024.07.26 choipix16@newspim.com

◆ "판매대금 400억, 회사 인수에 썼다"

구영배 대표와 큐텐은 실제로 수백억 원의 판매대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했다고 직접 밝히면서 느슨한 관리 감독도 도마에 올랐다.

티몬과 위메프는 소비자들이 결제한 금액을 1~2개월 뒤에나 판매자들에게 돌려줬다. 그 사이 수백, 수천억 원의 판매대금은 회사가 급히 필요한 곳에 아무 절차 없이 쓰였다.

구 대표는 지난 2월 미국의 이커머스 기업 위시를 인수하면서 판매대금을 일부 사용한 점을 시인했다.

인수대금 총 2300억 원 중 지분 교환 금액을 제외한 400억 원이 필요했는데, 이를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으로 충당했다는 것이다.

판매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산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회사 M&A 대금으로 유용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구 대표가 인정했지만 "빌린 대금은 한 달 후 즉시 상환했다"며 "위시 인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판매대금을 사용한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구 대표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판매대금의 행방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구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의 재무조직을 없애 자금을 쉽게 빼낼 수 있도록 했다. 구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 인수 후 재무조직을 큐텐그룹의 국내 본사 격인 큐텐테크놀로지로 일원화했다. 티몬과 위메프에는 영업과 MD 조직만 남았다.

현안 질의에서 류광진 티몬 대표가 "각 계열사 내부에는 재무팀이 없어 그룹 전반의 자금은 큐텐테크놀로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모른다"는 취지의 답변이 가능했던 이유다.

회사의 재무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재무본부장은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이날 정무위에 출석하지 않았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6회국회(임시회) 제5차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2024.07.30 pangbin@newspim.com

◆ 전방위 규제 예고... 애꿎은 불똥 튀나

이번 사태로 동종 업계만 애꿎은 피해를 보게 됐다. 느슨한 규제와 관리 감독이 도마에 오르며 당장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정무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민국에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들 전부 전수조사해야 한다"며 "정부 합동으로 TF 만들어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PG사도 겸직하고 있는 이커머스 기업들의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현정 의원은 "금융의 개념을 갖고 있다면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서 금융 회사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들도 적용해야 한다"며 "또 금융권에서 티몬과 위메프가 적자였을 때 적기 시정 조치를 내려 금융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각종 법안들도 적용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전체 이커머스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이커머스 전반에 소비자 신뢰가 하락하면서 거래가 줄고, 규제 강화로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경우 시장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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