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일제의 불법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문제와 과거 역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이날 자신의 마지막이 될 패전일 추도식에서 3년 연속으로 역사에 대한 반성을 표하지 않았다. 또 일본 내각 각료들은 태평양 전쟁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5년째 직접 참배했다.

역대 한국 정부는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대한 정책과 대일 인식을 분명히 밝혀왔다. 이같은 내용이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복절 경축사에 일본에 대한 메시지가 없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광복절 축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 지난해에는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로 지칭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아예 언급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2024.08.16

반면 일본은 더욱 극우적 역사인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추도식에서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을 뿐 과거 침략전쟁으로 인한 가해와 반성은 입에 담지 않았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총리로서 9번째 공물을 봉납했다. 또한 현직 각료들은 2020년 이후 5년 연속으로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역사 퇴행을 눈감고 묵인함으로써 일본의 역사 우경화를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올해에는 기하라 미노루(木原稔) 방위상의 야스쿠니 참배가 눈에 띈다. 일본 방위상이 패전일을 맞아 야스쿠니에 참배를 한 것은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특히 지난달 한·미·일 국방방관이 일본 도쿄에 모여 3국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협력각서'에 서명하는 등 한·미·일이 사실상 군사적 동맹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방위상이 태평양 전쟁 A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했다는 것은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용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5일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 과거 역사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대한민국이 그간 자유 가치를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튼튼히 해오면서 일본과 대등하게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는 함의가 있다"라며 "한·일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서고 일본과의 수출 격차가 사상 최소로 좁혀졌다는 점을 거론했다.

이에 대해 한·일 관계를 전담했던 전직 고위관료는 "한·일 간 역사 문제는 국력이나 자신감과 무관하게 정부가 엄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일본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더욱 당당하게 일본의 역사적 퇴행과 과거사 왜곡을 강하게 지적하고 비판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2018년 8월 15일 일본 종전 기념일을 맞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복장에 총과 검으로 무장한 시민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2024.08.16

민간 연구기관의 한 일본 전문가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태도를 '저자세'라고 지적하면서 그 배경을 두가지로 꼽았다. 윤석열 정부가 가장 큰 외교업적으로 내세우는 한·미·일 협력의 토대인 한·일 관계 개선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요소를 가급적 피하려는 정치적 이유과 윤석열 정부의 대일 기조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 인식이 일본의 '역사 역주행'을 방치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뉴라이트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이 준비중인 '한·일 공동문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과 같은 대일 기조를 유지한다면 과거 역사를 직시하는 토대 위에서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지향한다는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달리 일본의 식민지배에 면죄부를 주는 새로운 문서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opento@newspim.com